1. 개요[편집]
| 가상일의 원리 Principle of Virtual Work | |
|---|---|
| 진술 | 모든 허용 가상변위에 대해 $\delta W = 0$ |
| 핵심 가정 | 이상 구속 — 구속력의 총 가상일이 0 |
| 얻는 것 | 구속력(장력·수직항력·관절 반력)이 방정식에서 소거됨 |
| 동역학 확장 | 달랑베르 원리 — 관성력을 외력에 편입 |
| 쌍대 원리 | 가상력(여가상일)의 원리 → 단위하중법 |
| 수치해석에서의 정체 | FEM의 약형식 그 자체 |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움직임을 상상해서 대입한다. 그러면 알고 싶지 않았던 힘들이 알아서 사라진다.
가상일의 원리(principle of virtual work)는 구속을 만족하는 임의의 무한소 상상 변위(가상변위)에 대해, 계에 작용하는 힘들이 하는 일의 총합이 0이라는 조건이 평형과 동치라는 원리다. 정역학의 형태로 쓰면 한 줄이다.
이 원리가 300년 넘게 살아남은 이유는 딱 하나, 모르는 힘을 지워 주기 때문이다. 뉴턴식으로 자유물체도를 그리면 관절 반력·줄의 장력·매끄러운 면의 수직항력이 전부 미지수로 등장하고, 정작 구하려는 것과 무관한 이 미지수들이 방정식 개수를 부풀린다. 가상일은 이들이 원리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해 처음부터 방정식에 안 나타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문서에서 가장 중요한 주장은 뒤쪽에 있다. 유한요소법의 약형식은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가상일의 원리다. 갤러킨 방법이 시험함수를 형상함수와 같은 공간에서 뽑는다는 그 선택이, 구조역학의 언어로는 “가상변위를 요소 형상함수로 잡는다”와 완전히 같은 문장이다. 작용 범함수를 정류화하는 최소작용 원리 계열과의 관계도 여기서 정리된다.
2. 가상변위란 무엇인가[편집]
“가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이 변위가 실제로 일어나는 변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 가지가 실제 변위 와 다르다.
- 시간이 멈춰 있다(). 가상변위는 어떤 고정된 순간의 구속 형상과 양립하는 위치 이동이다. 그래서 구속이 시간에 의존하는 경우(레오노믹, 예: 일정 속도로 당겨지는 줄) 가상변위는 실제 변위와 다른 것이 정상이다.
- 무한소이고 구속과 양립한다(admissible). 줄에 매달린 추의 가상변위는 줄 길이를 유지하는 방향뿐이고, 벽에 붙은 절점의 가상변위는 0이다.
- 임의성이 본질이다. 한 개의 가상변위에 대해 이 성립하는 것은 아무 정보도 아니다. 모든 허용 가상변위에 대해 성립한다는 요구가 평형방정식 전부를 뽑아낸다. 뒤에서 볼 변분 기본보조정리가 이 임의성을 미분방정식으로 환전하는 장치다.
를 와 구분해 쓰는 표기 관습은 이 세 가지를 눈으로 구분하려는 것이다. 변분 는 곱·미분에 대해 미분과 똑같이 행동하므로(, ) 계산 규칙 자체는 새로 배울 게 없다. 자세한 형식은 변분법에 있다.
3. 구속력은 왜 사라지는가[편집]
원리의 심장은 이상 구속(ideal constraint) 가정이다. 구속력 들이 어떤 허용 가상변위에 대해서도
을 만족한다는 것. 주의할 점은 이게 합에 대한 조건이지 항마다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몇 가지 표준 사례가 왜 이 조건을 만족하는지 보면 감이 온다.
- 마찰 없는 접촉면. 수직항력은 면에 수직이고 가상변위는 면에 접하므로 각 항이 개별적으로 0이다.
- 늘어나지 않는 줄. 줄 양 끝에 걸리는 장력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데, 줄 방향 성분의 가상변위가 같으므로(길이 불변) 두 항이 정확히 상쇄된다.
- 강체 내부력. 뉴턴 제3법칙 쌍이 강체 가상변위에 대해 항상 상쇄된다. 강체를 “무한히 강한 구속”으로 볼 수 있는 근거다.
- 매끄러운 관절. 위 두 논리의 조합.
그리고 마찰은 이 가정을 위반한다. 미끄럼 마찰력은 상대 가상변위와 반평행이라 음의 가상일을 한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마찰을 구속력이 아니라 외력으로 따로 세어 우변에 넣는다. 이건 원리의 결함이 아니라 회계 방식의 문제다 — 일을 하는 놈은 명시적으로 적는다는 규칙만 지키면 된다.1
전체 힘을 (가해진 힘 + 구속력)로 쪼개고 위 조건을 대입하면, 평형 은
이 되어 구속력이 통째로 증발한다. 도르래 여섯 개짜리 장치의 역학적 이득을 장력을 한 번도 쓰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이유이자, 라그랑주 역학이 일반화 좌표만으로 굴러가는 이유다.
4. 달랑베르 원리 — 동역학을 정역학처럼[편집]
가상일의 원리 자체는 정역학의 문장이다. 여기에 관성항을 이항해 넣는 것이 **달랑베르 원리**다.
를 “관성력”이라는 이름의 가짜 외력으로 부르면, 움직이는 계가 매 순간 평형 상태처럼 취급된다. 이 형태를 라그랑주가 일반화 좌표 로 다시 쓴 것이 라그랑주-달랑베르 원리이고, 여기서 곧장
가 나온다. 즉 가상일은 라그랑주 방정식의 출발점이지 그 결과가 아니다. 유도 자체와 비보존력 처리는 해밀턴 원리·라그랑주 역학이 다루므로 여기서 반복하지 않는다. 한 가지만 강조하면, 달랑베르 경로는 작용 적분을 거치지 않으므로 퍼텐셜이 없는 힘(마찰·제어 토크·유체 항력)에 대해서도 그대로 성립한다. 라그랑지안을 못 쓰는 상황에서도 일반화 힘 는 언제나 정의된다는 것이 이 경로의 실무적 강점이다.
5. 구조해석의 두 얼굴 — 가상변위와 가상력[편집]
구조공학 교과서에서 “가상일”은 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원리를 한 이름으로 부른다. 이 구분을 흐리면 부호와 적용 범위에서 반드시 사고가 난다.
(가) 가상변위의 원리. 참 응력장 와 상상의 변형장 을 짝지어 . 요구되는 것은 응력이 평형을 만족한다는 것뿐이고, 가상변위는 적합(compatible)하기만 하면 된다. 이쪽이 FEM 강성방정식으로 이어진다.
(나) 가상력(여가상일)의 원리. 반대로 참 변형장 과 상상의 평형 응력장 를 짝짓는다. . 이쪽이 처짐을 구하는 단위하중법의 근거다.
실무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손계산 도구인 단위하중법은 (나)에 속한다. 처짐을 알고 싶은 점에 그 방향으로 크기 1의 가상하중을 걸고, 그것이 만드는 평형 내력장 를 구한다. 그러면 실제 하중이 만든 변형과 짝지어
가 성립한다. 회전각을 원하면 단위하중 대신 단위 모멘트를 걸면 되고, 트러스처럼 부재가 축력만 받는 계에서는 적분이 합으로 축약되어
로 끝난다. 표 하나로 부재별 를 더하면 처짐이 나오는, 계산기 시대 이전 구조공학의 대표 무기였다.2
주의할 실무 포인트 셋. 첫째, 대부분의 보·골조에서 전단항은 굽힘항의 수 %도 안 되므로 관례적으로 버린다 — 다만 형고가 큰 깊은 보나 보 이론의 티모셴코 영역에서는 버리면 안 된다. 둘째, 가상 내력장은 평형만 만족하면 되므로 부정정 구조에서는 아무 정정 기본계에서나 뽑아도 된다. 이 자유도가 이 방법을 부정정 해석(력법)의 유연도 계수 계산에 그대로 쓰게 해 준다. 셋째, 과 은 같은 부호 규약으로 그려야 한다 — 부호 실수는 이 방법에서 가장 흔한 오답 원인이다.
6. FEM의 약형식이 곧 가상일이다[편집]
이제 본론이다. 선형 탄성체의 강형식은
이다. 여기에 가상변위 를 곱해 적분하고 발산정리를 한 번 쓰면
가 된다. 왼쪽이 내부 가상일, 오른쪽이 외부 가상일이다. 갤러킨 방법 문서가 “가중잔차법에서 가중함수를 기저함수로 고른다”고 부르는 그 식이, 구조역학에서는 문자 그대로 “가상변위를 요소 형상함수로 고른다”이다. 두 문장은 같은 식의 두 번역이다.
여기서 세 가지가 공짜로 따라 나온다.
- 경계조건의 자동 분류. 발산정리가 뱉은 경계적분이 를 흡수하므로 트랙션 조건은 별도 처리 없이 우변에 들어간다(자연 경계조건). 반면 변위 조건은 이라는 시험함수 공간의 정의로 강제된다(필수 경계조건). “왜 어떤 BC는 강제하고 어떤 BC는 그냥 두느냐”는 입문자의 단골 질문에 대한 답이 이 한 줄이다.
- 일관 하중 벡터. 분포하중을 절점에 어떻게 나눠 실을지는 감이 아니라 계산이다. 로 정의되는 것이 일관(consistent) 하중 벡터이며, 등분포하중을 받는 2절점 보 요소에서 절점 모멘트 가 튀어나오는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절반씩 나눠 실으면 되지 않나”는 직관은 여기서 틀린다.
- 비선형에서도 그대로. 대변형·소성이 들어와도 좌변이 (그린-라그랑주 변형률과 2차 피올라-키르히호프 응력) 같은 짝으로 바뀔 뿐 구조는 같다. 이 좌변이 곧 비선형 구조해석의 내력 벡터이고, 그것을 변위로 한 번 더 미분한 것이 접선 강성행렬이다.
7. 강형식과의 등가성[편집]
약형식이 강형식보다 약하다는 이름은 요구 조건이 약하다는 뜻이지 정보가 적다는 뜻이 아니다. 해가 충분히 매끄럽다면 둘은 동치다. 되돌리는 계산이 짧다.
약형식에서 부분적분을 반대 방향으로 한 번 하면
이 나온다. 가 내부와 위에서 독립적으로 임의이므로, 변분법의 기본보조정리에 의해 두 괄호가 각각 0이어야 한다. 첫 괄호가 평형방정식, 둘째 괄호가 트랙션 경계조건이다. 자연 경계조건은 약형식의 부산물이 아니라 그 오일러 방정식의 일부라는 사실이 여기서 드러난다.
한 가지 유용한 관점 차이. 자기수반 문제에서는 이 약형식이 총 퍼텐셜 에너지 의 정류조건 과 같아서, 최소 퍼텐셜 에너지 원리로 갈아탈 수 있다. 그런데 가상일 쪽이 더 넓다 — 응력이 변형률의 퍼텐셜에서 오지 않는 경우(소성, 비연관 유동법칙, 비보존 추종하중)에는 최소화할 자체가 없지만 가상일 등식은 여전히 성립한다. FEM 교과서가 에너지 원리 대신 가상일로 정식화를 시작하는 이유가 이것이다.3
8. 어디까지 통하는가[편집]
- 비홀로노믹 구속. 미끄러지지 않고 구르는 바퀴처럼 속도에 걸린 구속에서도 “구속력은 가상일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은 여전히 쓸 수 있다. 다만 이때의 허용 가상변위는 구속 형상이 아니라 구속 형식이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의해야 하며, 이 지점에서 달랑베르 경로와 작용 변분 경로가 갈라진다(이른바 vakonomic 대 nonholonomic 논쟁).
- 부등식 구속. 접촉·마찰은 형태라 가상변위가 양방향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등식 이 변분부등식 으로 완화되고, 이것이 접촉 해석이 등식 문제보다 근본적으로 어려운 이유다.
- 혼합 정식화. 미지수를 변위 하나로 두지 않고 응력·압력을 독립 보간하면 가상일의 짝이 여러 쌍으로 늘어나며, 그 안정성 조건이 혼합유한요소법의 inf-sup 조건이다. 가상변위 원리와 가상력 원리를 한 변분식 안에서 섞는다고 보면 정확하다.
9. 여담 — 이름값[편집]
이 원리의 계보는 요한 베르누이가 1717년 바리뇽에게 보낸 편지의 “가상 속도의 원리”까지 올라간다. 라그랑주는 1788년 해석 역학(Mécanique analytique)에서 이것을 역학 전체의 공리로 승격시켰고, 그 책에 도형이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을 서문에서 자랑스럽게 밝혔다. 자유물체도 없이 역학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2세기 반이 지나, 도형 없이 세운 그 스칼라 등식이 도형(격자)을 잘게 쪼개는 소프트웨어의 커널이 되었다. ABAQUS 매뉴얼을 펼치면 이론 편 첫 장이 여전히 가상일 등식으로 시작한다. 이론 하나 잘 세워두면 후대가 250년을 우려먹는다.
10. 관련 문서[편집]
- 라그랑주 역학 · 해밀턴 원리 · 최소작용 원리
- 달랑베르 원리 · 일반화 좌표 · 라그랑주 승수법
- 단위하중법 · 카스틸리아노 정리
- 유한요소법 · 갤러킨 방법 · 강성행렬
- 혼합유한요소법 · 요소 잠김 · 접촉 해석
- 변분법 · 구조해석 · 보 이론
11. Footnotes[편집]
-
그래서 “구속력은 일을 하지 않는다”를 물리 법칙으로 외운 사람은 첫 마찰 문제에서 무너진다. 이건 법칙이 아니라 모델링 가정이고, 우리가 그 가정이 성립하도록 구속을 정의한 것에 가깝다. 성립하지 않으면 그 힘을 외력 칸으로 옮겨 적으면 그만이다. ↩
-
이 표를 손으로 채우던 시절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구조 기술사 시험에서 트러스 처짐 문제는 여전히 표를 그리게 하며, 채점자는 부재 하나하나의 부호를 본다. FEM이 1초에 끝낼 계산을 20분 동안 손으로 하는 이유는 답이 아니라 어디서 부호를 틀리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
-
다만 이 자유에는 대가가 있다. 최소화할 범함수가 있으면 근사해가 참 해에 에너지 노름에서 가장 가깝다는 보증(Céa 보조정리)이 따라오지만, 가상일만 있는 비자기수반·비보존 문제에서는 그 보증이 없다. 갤러킨 방법의 최적성이 자기수반 연산자에서만 성립한다는 이야기와 정확히 같은 사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