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크누센수(Knudsen number, )는 기체 분자의 평균자유행로 를 유동의 대표 길이 로 나눈 무차원수로, 유체를 연속체로 취급해도 되는지를 판정하는 척도다.
레이놀즈수가 “관성 대 점성”이고 마하수가 “속도 대 음속”이라면, 크누센수는 **“분자 대 형상”**이다. 분자가 벽에 부딪히기 전에 다른 분자와 몇 번이나 부딪히느냐를 세는 숫자라고 보면 된다. 이 충분히 작으면 분자 하나하나는 잊어버리고 밀도·속도·온도라는 국소 평균장으로 서술해도 되지만, 이 커지면 그 평균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린다.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 “물리 법칙”이 아니라 작은 크누센수 극한에서만 성립하는 근사라는 사실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 이 수다.1
경질구 기체에서 평균자유행로는
로, 압력에 반비례한다. 상온·1기압 공기는 . 그래서 미터급 형상에서는 이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고도 80 km 상공에서는 가 수 cm~수 m가 되고, 하드디스크 헤드-디스크 간극(3 nm)에서는 상온 1기압인데도 이 된다. 진공 챔버와 나노 기공은 압력을 낮춰서, MEMS와 셰일 가스는 을 줄여서 같은 곳에 도착한다.
2. 유동 영역 구분[편집]
경계값은 관례적이고 문헌마다 ±1 자릿수쯤 흔들리지만, 통상 다음 네 구간을 쓴다.
| 영역 | 범위 | 지배 방정식 | 벽 조건 |
|---|---|---|---|
| 연속체 | 나비에-스토크스 | 점착(no-slip) | |
| 미끄럼 | 나비에-스토크스 + 미끄럼 보정 | 속도 미끄럼·온도 도약 | |
| 전이 | 볼츠만 방정식 | 기체-표면 산란 모형 | |
| 자유분자 | 충돌항 없는 볼츠만(자유 수송) | 벽에서 벽으로 직행 |
전이 영역이 제일 고약하다. 분자 충돌을 무시할 수도 없고 연속체로 뭉갤 수도 없어서, 직접 시뮬레이션 몬테카를로나 이산 속도법 같은 볼츠만 방정식 기반 기법 말고는 답이 없다. 반대로 자유분자 영역은 의외로 편하다 — 분자끼리 안 부딪히니 벽에서 벽으로 가는 시선 계산(view factor 비슷한 것)만 하면 되고, 진공 장비의 컨덕턴스 설계가 바로 이 계산이다.
3. 마하수·레이놀즈수와의 관계[편집]
기체동역학에서 를 쓰면 세 무차원수가 하나로 엮인다.
즉 크누센수는 독립 변수가 아니다. 마하수가 크고 레이놀즈수가 작으면 자동으로 희박해진다. 재진입체가 고고도에서 으로 날면서도 는 밖에 안 되는 상황이 정확히 그것이고, 반대로 저속 미세유동은 가 인데 가 라 또 희박해진다. 이 관계식은 ” 이 위험한지”를 압축성 유동 해석 조건표만 보고 뒤통수 맞기 전에 미리 계산해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전역 은 믿을 게 못 된다. 충격파 내부 두께는 정도라 그 안에서는 국소 이 이고, 팽창부에서는 밀도가 떨어져 가 폭증한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기울기 기반 국소 크누센수 ( = 밀도·온도·속도)를 쓰고, 이게 대략 를 넘는 영역을 “연속체 붕괴 영역”으로 표시해 하이브리드 해석의 경계로 삼는다.
4. 나비에-스토크스가 깨지는 지점[편집]
이 을 넘어가면 제일 먼저 무너지는 건 지배 방정식이 아니라 경계조건이다. 벽 근처에서 분자는 벽과 열평형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 결과 유체는 벽을 상대로 미끄러진다. 맥스웰의 1차 미끄럼 조건은
이고, 오른쪽 둘째 항이 유명한 열유동 미끄럼(thermal creep) — 온도 기울기만으로 기체가 찬 쪽에서 더운 쪽으로 기어간다. 압력차 없이 흐르는 크누센 펌프가 이걸 그대로 써먹는다. 온도에는 대응하는 온도 도약(temperature jump) 조건이 붙어서, 벽 온도와 벽에 접한 기체 온도가 아예 다른 값이 된다. , 는 수용계수로 표면 상태에 따라 사이가 보통이며, 이 값 하나가 결과를 수십 % 흔든다.
에서는 2차 미끄럼 조건( 항 추가)을 쓰기도 하는데, 계수가 문헌마다 제각각이라 사실상 튜닝 파라미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벽에서 두께 안쪽의 크누센층(Knudsen layer)이다. 이 층 안에서는 속도 분포가 국소 맥스웰 분포에서 크게 벗어나 뉴턴 점성 법칙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속도 분포가 해석적이지도 않다. 미끄럼 조건은 크누센층 바깥의 해를 벽까지 외삽했을 때 맞도록 맞춘 것이지, 층 내부를 재현하지 않는다. 층 두께가 유로 폭과 비슷해지는 순간(=전이 영역) 이 트릭은 통째로 폐기된다.
5. 채프먼-엔스코그 전개와 고차 방정식[편집]
채프먼-엔스코그 전개의 관점에서 보면 크누센수의 지위가 분명해진다. 볼츠만 방정식의 분포함수를 크누센수의 멱급수
로 놓고 모멘트를 취하면, 0차에서 오일러 방정식, 1차에서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그리고 점성·열전도 계수의 분자적 표현), 2차에서 버넷 방정식, 3차에서 초버넷 방정식이 순서대로 튀어나온다. 즉 나비에-스토크스는 크누센수 1차 근사다. 미끄럼 영역까지는 1차 항에 벽 보정을 얹어 버티고, 그 위로는 원리적으로 고차 항을 더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버넷 방정식은 짧은 파장 교란에 대해 선형 불안정(보빌레프 불안정)이라 격자를 촘촘하게 할수록 발산하고, 조건에 따라 엔트로피 생성이 음수가 되기도 한다. 이걸 고치려는 시도가 augmented Burnett, BGK-Burnett, 그리고 그라드 13모멘트를 정칙화한 R13 방정식 계열이다. 실무적 결론은 단순하다 — 전이 영역에서는 전개를 더 밀지 말고 운동론으로 갈아타라.
6. 수치기법 선택과 응용[편집]
- : 평범한 CFD. 마음 편히 유한체적법을 쓴다.
- 미끄럼 영역: 기존 솔버 + 미끄럼/온도 도약 경계조건. 상용 코드도 대부분 옵션으로 제공한다.
- 전이 영역: 직접 시뮬레이션 몬테카를로가 사실상 표준. 이산 속도법·통합 기체운동론 기법(UGKS)도 쓰인다.
- 자유분자 영역: 시험입자 몬테카를로, 각도 계수법.
격자 볼츠만 방법의 위치는 미묘하다. 이름과 달리 표준 D2Q9/D3Q19 격자는 저차 가우스-에르미트 구적이라 사실상 나비에-스토크스만 복원한다. 유한 을 노리려면 고차 격자와 벽 반사 모형을 갖춰야 하고, 그렇게 해도 전이 영역 상부에서는 신뢰도가 떨어진다.2
응용 분야는 압력이 낮거나 형상이 작은 곳 전부다. MEMS(마이크로채널, 가속도계의 스퀴즈 필름 감쇠), 재진입 공력가열(고고도 자유분자 → 전이 → 연속체를 한 궤적에서 다 겪는다), 진공 공정(증착·스퍼터링·터보분자펌프 컨덕턴스), 우주추진 플룸과 태양전지판 오염, 그리고 셰일 가스(다공성 매질 유동)가 대표적이다. 나노미터급 기공에서는 미끄럼 때문에 겉보기 투과도가 다르시 값보다 커지고, 이를 압력의 함수로 보정한 것이 클링켄버그 보정 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실험 사실 하나. 긴 미세관의 무차원 질량유량을 에 대해 그리면 부근에서 최솟값이 나타난다(크누센 최소). 연속체 쪽에서는 이 커질수록 미끄럼 때문에 유량이 늘고, 자유분자 쪽에서는 벽 산란이 지배해 다시 늘기 때문이다.3 나비에-스토크스로는 절대 못 재현하는 이 곡선이, 희박기체 해석 코드의 국룰 검증 케이스다.4
7. 관련 문서[편집]
- 무차원수 · 레이놀즈수
- 볼츠만 방정식 · 채프먼-엔스코그 전개
- 직접 시뮬레이션 몬테카를로 · 격자 볼츠만 방법
- 기체동역학 · 압축성 유동
- 경계 조건 · 경계층
- 다공성 매질 유동 · 스토크스 유동
- 반도체 소자 시뮬레이션
8. Footnote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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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유체역학 첫 시간에 “유체는 연속체다”라고 배우고 넘어가는 그 한 줄이, 사실은 이라는 조건부 계약이었다는 사실. 계약서 뒷면의 작은 글씨는 언제나 대학원에서 읽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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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 볼츠만이 “볼츠만 방정식을 푸는 방법”이라는 소개는 절반만 맞다. 격자를 저차로 자른 순간 고차 모멘트를 못 담고, 그 결과 복원되는 건 결국 나비에-스토크스다. 이름값으로 희박기체 논문을 쓰려다 리뷰어에게 혼나는 전통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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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누센이 1909년에 직접 측정해서 보고한 현상이다. 10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이 최소점의 위치와 깊이를 정확히 맞히는 것이 희박기체 코드의 통과 의례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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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크누센수의 주인공 마르틴 크누센(Martin Knudsen, 1871~1949)은 덴마크 물리학자로, 해양학에서도 염분-밀도 표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진공과 바닷물을 동시에 다룬 이력이 어쩐지 무차원수 이름값에 어울린다. ↩